얼룩조릿대잎차

‘입춘이 언제쯤이더라?’하고 달력에 눈이 갈 즈음이면 왠지 푸릇푸릇한 잎차의 맛이 그리워진다. 하물며 동네 직박구리들도 겨우내 먹던 산수유 열매에 물렸는지 이리저리 바쁘게 옮겨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기보다 끼리끼리 수다에 전념하는 듯하다. 다행스러운 건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특징이 뚜렷하고 깊은 산들이 많으며, 크고 작은 섬 약 3,500여개의 섬들이 있다고 한다. 즉, 계절과 지역에 따라 생물군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 차 만드는 사람에게 재료가 떨어질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배송도 빠르니 계절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직박구리보다 형편이 낫다.

오늘은 제주도에서 온 조릿대잎으로 차를 만들었다. 정확히는 ‘제주 얼룩조릿대잎차‘를 만들었다. 조릿대는 산죽(山竹)이라고도 불리는 여러해살이 볏과 식물로 전국의 산과 들에 무리지어 잘 자란다. 특히 제주도의 얼룩조릿대는 겨울이 되면 길쭉한 피침형(披針形) 잎의 테두리가 옅은 갈색으로 변하며, 가늘게 잘라 차로 만들면 예쁜 무늬가 남아 눈이 즐겁다.

제주도 얼룩조릿대잎

잎을 깨끗이 씻으니 반질반질 매끈한 초록잎이 도드라져 보인다. 역시 대나무는 대나무이다.

조릿대를 밀폐 용기에 담아두었다가 뚜껑을 열면 코끝을 살짝 치는 매운 냄새가 난다. 천연유황 냄새다. 천연유황은 예로부터 염증을 다스리는 귀한 물질로 각종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 주어 관절염, 간염, 위궤양, 구내염 등 각종 염증성 질환과 중금속 해독, 항암 등에 관여하는 물질이라 한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조릿대는 아미노산, 칼슘, 비타민 B·C·K, 철, 당질 등 다양한 유익 성분도 풍부하여 장복하면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꾸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잎자루 부분 잘라내기

이번에는 잎만 썼지만 다음엔 잎자루 부분도 두드려 차를 만들어봐야겠다. 사진으로 보니 버리는 잎자루 양이 꽤 많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위로 잎을 잘게 자르기

조릿대잎 자르는 동안 사각사각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차로 잘 우러나게, 되도록 가늘게 자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유념(揉捻)을 견딜 수 있을만큼의 폭을 유지하도록 주의해야겠다.

완전 건조한 얼룩조릿대잎차 병입
얼룩조릿대잎차 한 조각

소슬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마른 잎들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찻잎을 덖고 마침내 병입하였다. 완성된 얼룩조릿대잎차 한 조각을 꺼내어 자세히 살핀다. 가볍고 예쁘다. 딱 하룻저녁만 고요히 쉬게 하고 내일 아침 더운 물에 내려 맛을 볼 작정이다.

조릿대잎차는 삼 사 년 이상 오래 묵힐수록 약효가 좋아지고 냉한 기운도 가신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대나무가 가지고 있는 찬 성질이 몸 안의 열을 내리고 가슴에 들어찬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을 주지만, 몸이 차거나 혈압이 낮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차를 만들어 놓고 삼 년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몸에 열이 많고 화가 많은 사람은 차게, 몸이 차고 저혈압인 사람은 따뜻하게 홀짝홀짝 즐겨보는 건 어떨까?

복을 부르는 복조리의 재료 조릿대. 이렇게 직접 복을 만들어 마실 수 있게 되니 ‘은밀하고 위대한’ 연금술사가 된 것 같다.

*잎차에 함유된 유황 성분이 쇠와 만나면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니 가급적 유리 용기에 보관하고 유리나 도자기 다관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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